망치와 엔지니어

망치를 든 사람에겐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
— 아브라함 H. 매슬로

이제 막1년 차를 넘긴 주니어 엔지니어였던 나는,
자신감과 의욕이 넘치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당시 나는 회사의 작은 모니터링팀에 속해 있었고,
팀은 낡은 배치 시스템을 스트리밍으로 전환하는 PoC를 진행 중이었다.

그 과정에서 Serverless, Ansible, Kafka, ELK 같은 최신 기술에 빠져 있었고,
이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매슬로의 비유처럼, 망치를 든 채 세상의 모든 문제를 못으로 본 셈이었다.

그러던 중, 모니터링 경험이 풍부한 새로운 동료가 팀에 합류했다.
동료는 상황을 파악하더니,
Java Spring과 Kafka를 활용한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인 해결책을 제안했다.

나와 사수 그리고 동료와 함께 긴 회의 끝에 복잡한 기술로 뒤덮인 나의 PoC가 아니라
동료의 심플한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더 간단한 기술로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엔지니어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열정을 가져야 하지만,
진정한 가치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비즈니스에 실질적인 가치를 더하는 문제 해결에 있다.
기술은 그저 도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얼마 후, 흑백 요리사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비슷한 통찰을 마주한 적이 있다.
출연자들이 모두 독창적인 요리를 선보이는 상황에서,
한 셰프는 별다른 조리 없이 단순한 보섭살 구이를 내놓았다.
이에 대해 안성재 셰프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건넸다.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이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져요.
음식의 세계는 무궁무진해요. 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해 보세요.”

안셰프의 말이 전하는 바는 명확했다.
단순히 재료를 많이 쓰거나 아끼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재료를 최대한 활용해 가장 맛있고 창의적인 요리를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요리와 엔지니어링은 겉으로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닮아 있다.
중요한 것은 도구와 기술에 얽매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핵심이다.

엔지니어링의 세계는 무한하다.
지금 들고 있는 망치를 내려놓아 보라.
그때야 비로소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